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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반도 안면도에서 6㎞ 남짓 거리
순조 때 독일인 귀츨라프가 머물러
성경 나눠주며 기독교 처음 소개
금사홍송 둘러싸인 해수욕장도 자랑

 

 


대도(古代島). 충청남도 보령시의 삽시도에서 북쪽으로 4.5㎞ 떨어진 이 섬엔 조금 특이한 이름이 붙었다. 예로부터 마을이 형성돼 집터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하여 고대도라 불린다는데, 대체 언제부터 마을을 이루고 살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단지 아주 오래 전엔 ‘고퀨’이라고도 불렸다는 사실 정도밖에. 면적이 0.82㎢에 불과한 이 섬에 약 200명의 섬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산다. 대천항과 오천항에서 각각 18㎞ 떨어져 있고, 태안반도 남쪽의 안면도 영목항과는 6.5㎞ 거리다.

 

고대도에 발을 내디디면 이 섬의 명물 중 하나인 방파제가 제일 먼저 반갑게 맞이한다. 방파제 옆에는 국립공원 안내 표지판이 서 있다. 이 일대가 청정해역을 자랑하는 국립공원이라는 얘기다. 방파제를 나와 오른쪽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빨간 등대가 서 있다. 등대를 지나 조금 더 가면 바위 단면이 날카로운 간단여가, 그 너머 북서쪽 끝에는 옛날 오천수영의 수군들이 가끔 드나들며 목을 지키던 조구여가 자리잡고 있다. 이즈음 알록달록 색칠돼 낯선 여행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물이 하나 있으니, 바로 청룡초등학교 고대분교다. 현재 이 학교 학생은 단 한 명. 이웃한 장고도에 18명의 학생이 있는 것과 견주면 잠시나마 쓸쓸함을 떨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쓸쓸함도 잠시뿐. 눈앞엔 섬을 통틀어 가장 멋진 가옥이 떡하니 나타난다. 분교 건물과 맞대어 지어진 이 건물은 십자가만 아니라면 도무지 무슨 건물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다.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건물은 섬에 지어진 교회치고는 상당히 세련된 모양새다. 바로 고대도교회.

 

고대도 당산. 해마다 정월 3일이면 마을사람들이 당산 제단에 모여 풍어를 비는 당제를 올린다. 이재언 제공

고대도 당산. 해마다 정월 3일이면 마을사람들이 당산 제단에 모여 풍어를 비는 당제를 올린다. 이재언 제공

 

고대도교회의 모습. 이 땅에 처음으로 기독교를 소개한 카를 귀츨라프를 기리는 교회다. 이재언 제공

고대도교회의 모습. 이 땅에 처음으로 기독교를 소개한 카를 귀츨라프를 기리는 교회다. 이재언 제공

서양에 최초로 한글 소개한 인물

 

고대도라는 작은 섬은 유독 기독교와 인연이 아주 깊은 섬이다. 1832년 ‘로드 애머스트’라는 이름의 커다란 서양배가 갑자기 우리나라 서해안에 나타나 문호를 개방하고 통상을 요구한 적이 있었는데, 고대도는 바로 이 배가 한동안 머물던 섬이다. 당시 이 배엔 중국어 통역관 및 의사 노릇을 하는 29살의 독일인 카를 귀츨라프란 인물이 타고 있었다. 그해 7월25일 고대도에 도착한 귀츨라프는 홍주 목사 이민희를 만나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조선 왕(순조)에게 정식으로 통상을 요구하는 청원서와 한문 성경, 26종의 책자와 망원경 등을 진상하면서 조선 조정으로부터 통상 허가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조선 조정의 회신을 기다리는 동안, 귀츨라프는 고대도 주민들에게 한문 성경과 약품을 나눠주는 한편, 먹을거리가 변변치 못해 고생하는 섬사람들을 위해 감자를 심고 재배하는 법을 손수 보여줬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포도주와 포도즙 제작법도 전수했다고 한다. 또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해 주민들에게 가르쳐주기도 했다. 특히 귀츨라프는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조선에 독자적인 한글이 있다는 사실에 감탄해 한글을 기꺼이 배웠고, 이를 토대로 서양에 최초로 한글을 소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조선 조정으로부터 통상 허가를 받지 못한 채 8월12일 섬을 떠났으나, 귀츨라프는 훗날 동아시아 항해기를 책으로 남겨 미국과 유럽에 조선이란 나라를 널리 알렸다. 그가 남긴 ‘한글에 대한 소견’이라는 소책자는 독일은 물론 영어로 번역돼 여러 나라에 소개됐다.

 

기암괴석과 금사홍송으로 둘러싸인 고대도 해안 절경. 이재언 제공

기암괴석과 금사홍송으로 둘러싸인 고대도 해안 절경. 이재언 제공

섬 곳곳엔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다. 섬을 한바퀴 둘러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재언 제공

섬 곳곳엔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다. 섬을 한바퀴 둘러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재언 제공

고대도교회는 조선에 배를 타고 들어온 최초의 선교사인 귀츨라프를 기리는 교회다. 건물 1층은 작은 예배당이고, 2층엔 귀츨라프에 대한 자료들이 정성껏 보관돼 있다. 섬에 교회가 세워진 건 1982년. 그러니까 귀츨라프 선교사가 돌아간 지 약 150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2001년 ‘귀츨라프 선교사 기념교회’로 공식지정됐고, 2012년엔 보령시와 보령시 기독교연합회 주관으로 귀츨라프 180주년 세미나도 열렸다. 7월25일은 ‘귀츨라프의 날’로 지정돼 있다. 그가 이 섬에 처음 도착한 날을 기념해 만든 것이다.

 

귀츨라프 선교사를 기리는 교회 건물을 지나면 공터와 밭, 집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자동차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흔한 식당 하나 보이지 않는다. 비록 기독교와 인연이 깊은 섬이라고는 해도, 오랜 역사를 지닌 섬이다 보니 옛 전통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다. 해안도로에서 나와 산으로 가는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당산 하나가 눈에 띈다. 당산 표지판 뒤로 기와를 얹은 담장을 두른 공간 제단에는 검은색 대리석에 ‘각시당’이라 쓰인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고대도에는 뒷산, 당산, 산끝재, 봉화재 등 여러 개의 산이 있다. 이 중 봉화재는 섬 중앙에 있는 가장 높은 산이다. 산이라고 해봤자 높이가 89.5m에 불과하지만, 예부터 조난이 발생하거나 외적의 침략이 있을 땐 봉화를 올렸을 만큼 중요한 장소다. 윗말의 서쪽엔 44m의 낮은 당산이 하나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정월 3일 당제가 열린다. 마을사람들이 모여 풍어를 비는 행사다. 예부터 농토가 부족해 주민 대부분이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에 종사했는데, 워낙 사고가 잦다보니 이곳 당산에서 풍어와 안녕을 빌었다고 한다. 그나마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섬을 떠나면서 한동안 당산제는 중단됐다가, 1992년부터 다시 지낸다고 한다.

 

 

주민들이 바지락을 캐고 있는 모습. 이재언 제공

주민들이 바지락을 캐고 있는 모습. 이재언 제공

고대도 주민들이 그물을 수선하고 있다. 이재언 제공

고대도 주민들이 그물을 수선하고 있다. 이재언 제공

원산도와 안면도가 손에 잡힐 듯

 

마을을 내려와 해안도로를 따라 천천히 걷노라면 섬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록 작은 섬이지만, 당산 너머엔 보란듯이 기암괴석과 금사홍송으로 둘러싸인 당산해수욕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다지 크지 않은 자그마한 자갈밭이 은근한 매력을 풍긴다. 수심은 1~2m. 해안도로 곳곳엔 산책로도 잘 정비돼 있다. 왼쪽으론 원산도와 안면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갯바위와 모래밭을 지나 고대도의 최남단 몽돌해안 남쪽 끝자락엔 우뚝 솟은 바위 하나가 서 있는데, 이 바위가 바로 ‘선바위’(돛단여)다.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는 어민들이 무사귀환을 빌며 한번씩 머리를 숙이고 지나간다는, 마치 마을을 지키는 장승과도 같은 바위다. 워낙 자그마한 섬이라 걸어서 한바퀴 둘러보는 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대천항에서 하루 3차례 운항하는 신한훼리호를 타면 도중에 여러 섬을 거쳐 50분 만에 고대도에 닿는다. 고대도 인근은 전복·해삼 양식장 제65호로 지정돼 있다. 그만큼 천혜의 청정해역을 자랑한다. 접근성이 뛰어나 마음 편하게 둘러볼 수 있는 고대도. 아름다운 풍광을 음미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둘러보기엔 더없이 안성맞춤이다. 이 땅에 기독교 신앙의 씨앗을 뿌린 귀츨라프의 흔적을 더듬어보려는 사람은 물론일 테고.

 

[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travel/8316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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